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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동안 아무도 몰랐던 문양이 단 6개월 만에 300개 넘게 발견됐다면,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저는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100년 치 연구 성과를 AI가 6개월 만에 따라잡았다는 건, 기술이 발전했다는 말 한마디로 넘기기엔 너무 묵직한 숫자였기 때문입니다. 페루 나스카 사막에 새겨진 거대한 지상화, 나스카 라인. 이 오래된 수수께끼를 푸는 방식이 2024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나스카 라인
    나스카 라인

     

    AI 분석이 바꾼 고고학의 속도

    일본 야마가타 대학의 마사토 사카이 박사 연구팀은 2018년부터 나스카 라인 연구에 딥러닝 기반의 이미지 인식 모델을 도입했습니다. 여기서 딥러닝이란 인간의 신경망 구조를 모방해 대량의 데이터에서 스스로 패턴을 학습하는 AI 기술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수천 장의 지형 이미지를 보여주면 AI가 "이게 문양이다, 저건 아니다"를 스스로 구분하는 눈을 갖게 되는 겁니다.

     

    연구팀은 기존에 확인된 나스카 문양 430개를 AI에게 학습시켰습니다. 그런데 430개라는 숫자는 머신러닝 학습 데이터로는 턱없이 부족한 양입니다. 그래서 연구팀은 문양이 아닌 것들, 즉 자연적인 침식 자국, 물길 흔적, 동물 발자국까지 함께 학습시켜 모델이 진짜 문양과 아닌 것을 정밀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정교화했습니다. 저도 개발 업무에서 AI 모델을 활용할 때 '노이즈 데이터'를 얼마나 잘 걸러내느냐가 성능을 좌우한다는 걸 경험했는데, 이 과정이 정확히 그 원리와 같았습니다.

     

    이후 629㎢에 달하는 나스카 판파 전체를 해상도 10cm 단위로 디지털화한 뒤 격자 형태로 분할해 스캔했습니다. AI는 각 격자마다 문양이 존재할 확률을 수치로 산출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후보지 1,309곳을 선정했습니다. 이후 고고학자들이 드론과 도보 현장 조사로 직접 확인한 결과, 단 6개월 만에 303개의 새로운 형상 문양이 발견되었습니다. 지난 100년간 축적된 430개에 근접하는 수를 6개월 만에 찾아낸 것으로, 발견 속도가 약 16배 빨라진 셈입니다(출처: 야마가타 대학 나스카 연구소).

    • AI 학습 데이터: 기존 문양 430개 + 비문양 이미지(침식 자국, 물길, 발자국 등)
    • 스캔 범위: 629㎢ / 해상도 10cm 단위 격자 분할
    • 후보지 1,309곳 선정 → 현장 확인 후 303개 신규 문양 확정 (아직 968곳 미확인)
    요약: AI가 100년치 발견 성과에 맞먹는 수의 나스카 문양을 단 6개월 만에 찾아냈으며, 이는 딥러닝 기반 패턴 인식 기술이 고고학 연구의 속도 자체를 바꾼 사례입니다.

    지상화 발견이 드러낸 두 가지 얼굴

    이번 AI 분석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숫자가 아니라 내용이었습니다. 새롭게 발견된 303개의 문양은 기존에 알려진 나스카 라인과 성격이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나스카 지상화는 라인 타입으로 분류됩니다. 길이 수백 미터에서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형상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지 않으면 전체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구조입니다. 135m짜리 콘도르, 285m에 달하는 펠리컨이 대표적입니다.

     

    반면 AI가 새롭게 발굴한 문양들은 릴리프 타입입니다. 여기서 릴리프 타입이란 돌출된 지형이나 경사면에 3~10m 크기로 새겨진 소형 부조 형식의 문양을 말합니다. 너무 작고 희미해 육안으로는 거의 식별이 불가능한 수준이어서 그동안 발견되지 못했던 것들입니다. 제가 직접 영상을 보면서 이 대비를 확인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같은 나스카 사막 안에 이렇게 성격이 다른 두 종류의 문양이 공존했다는 게 단순한 미술적 다양성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목적을 가진 두 체계였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연구팀 분석 결과, 릴리프 타입 문양의 81.6%는 인간형 또는 인간과 관련된 형상이었습니다. 추상적인 인간형, 가축인 라마와 알파카, 심지어 참수된 머리 형상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이 문양들은 나스카 평원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에서 평균 43m 이내에 집중 분포하고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라인 타입이 하늘의 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릴리프 타입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고대의 소통 수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요약: AI가 발견한 릴리프 타입 문양은 기존 라인 타입과 크기·위치·내용이 모두 달라, 나스카 지상화가 단일 목적이 아닌 두 가지 다른 체계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카와치 신전과 순례 경로의 연결

    그렇다면 거대한 라인 타입의 문양들은 왜 만들어진 걸까요? 마사토 사카이 박사 연구팀의 AI 분석은 이 질문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분석 결과 나스카 라인의 네트워크는 카와치 신전을 향해 수렴하는 구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카와치 신전은 나스카 시에서 서쪽으로 약 28km 떨어진 거대한 의례 복합 단지로, 면적 150㏊에 40개 이상의 피라미드형 토분과 어도비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어도비란 진흙과 짚을 섞어 햇볕에 말린 흙벽돌로, 굽지 않기 때문에 건조한 사막 환경에서만 수천 년간 보존될 수 있습니다.

     

    카와치에서 주목되는 점은 생활 흔적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식기류보다 의례용 채색 도자기가 압도적으로 많고,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모여들었다가 흩어진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즉 이곳은 상시 거주지가 아니라 특정 시기에 집단적으로 찾아오는 성소였던 겁니다. 카와치가 성소로 선택된 이유 역시 분명합니다. 이 지점은 나스카 강이 지하로 잠시 흐르는 구간으로, 극심한 가뭄에도 지하수가 마르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미국 콜게이트 대학의 인류학자 앤서니 아베니 교수는 나스카 판파에서 62개 이상의 수렴 지점을 확인했으며, 그 위치가 공교롭게도 하천 상류이자 수원지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출처: 콜게이트 대학). 그는 사다리꼴 문양의 넓은 쪽은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이는 광장 역할을, 좁은 쪽은 의례 행진의 진행 방향을 가리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제 경험상 데이터가 한 지점으로 수렴하는 패턴이 보이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설계입니다. 나스카 라인의 네트워크 구조도 정확히 그런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요약: 나스카 라인의 네트워크는 카와치 신전을 향해 수렴하는 순례 경로였으며, 이는 물에 대한 감사와 기우 의례의 흔적으로 해석됩니다.

    인간 협력 없이 AI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이번 연구에서 AI가 한 일을 정확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AI는 후보지 1,309곳을 선정했고, 실제 문양으로 확정된 건 303개입니다. 나머지 1,006곳은 AI가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현장에서 탈락하거나 아직 미확인 상태입니다. 이 수치가 말해주는 건 AI가 틀렸다는 게 아니라, AI의 역할이 '정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압축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개발 현장에서 이와 매우 비슷한 경험을 해봤습니다. 예전에는 수천 줄의 로그를 직접 들여다보며 오류 원인을 찾아야 했는데, AI 도구를 도입한 이후에는 의심 구간을 먼저 추려주고 저는 거기서 최종 판단만 내리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처음엔 AI가 제시하는 후보를 그대로 믿었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습니다. 결국 AI가 걸러준 결과에도 반드시 사람의 검증이 따라야 한다는 걸 몸으로 배웠죠. 나스카 연구도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이번에 발견된 릴리프 타입 문양들은 대부분 기존 라인 타입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는 나스카 문명 이전의 파라카스 문명에서 나스카 문명으로 전환되는 시기, 즉 문화적 전환기 연구에 결정적인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파라카스 문명이란 기원전 800년경부터 기원후 100년경까지 페루 해안 지역에 번성했던 문명으로, 정교한 직물과 두개골 수술로 잘 알려진 나스카의 선행 문명입니다. AI가 찾아낸 오래된 문양들이 두 문명 사이의 연결 고리를 밝혀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직 현장 확인이 이루어지지 않은 후보지 968곳이 남아 있습니다. 이 숫자 안에 어떤 발견이 숨어 있을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AI가 가능성을 좁혀주고, 고고학자가 현장에서 의미를 확인하는 이 협력 방식이 계속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나스카의 수수께끼가 풀릴 가능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요약: AI는 방대한 데이터에서 가능성을 압축하는 역할을 하고, 최종 판단과 의미 해석은 반드시 전문가의 현장 검증이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과 AI의 협력이 이 연구의 핵심입니다.

    나스카 라인이 흥미로운 건 그 규모나 신비로움 때문만이 아닙니다. 2,000년 전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2024년의 AI가 새로 읽어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기술과 인문학이 만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연구를 보면서 AI는 사람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볼 수 없던 것을 보이게 해주는 도구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고고학에서만이 아니라 의료, 환경, 소프트웨어 개발 할 것 없이, 앞으로 AI와 전문가가 역할을 나누는 방식이 연구와 실무의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나스카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은 아래 원본 영상을 직접 보시길 권합니다. 지상화의 실제 이미지와 함께 보면 숫자들이 훨씬 실감 나게 다가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U_4zV407U